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미 헨드릭스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wikitree.com/Hendrix-750.jpg|width=100%]]}}} || || {{{#fff '''가족 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알 헨드릭스, 어린 지미 헨드릭스, 어머니 루실 헨드릭스, 동생 레온 헨드릭스.]}}} || 지미 헨드릭스는 1942년 미국, [[인종차별]]이 합법인 시절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아버지 제임스 알렌 '알' 헨드릭스와 어머니 루실 지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미 헨드릭스의 혈통에는 다인종의 피가 섞여있다. 그의 외조부, 조부는 모두 전직 노예와 백인 주인 사이에 태어났으며, 외조모와 조모도 둘 다 인디언과 흑인 노예의 혼혈이었다.] 루실이 지미를 출산했을 때는 겨우 17살밖에 되지 않았다. 이 부부는 지미를 낳은 이후에도 5명의 자녀를 가졌으나 가난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 하나둘 입양시키거나 위탁보호 시설로 보냈다. 아버지랑 어머니가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서 3명의 자식은 장애, 기형아로 태어났다. 그나마 바로 아래 동생인 레온 헨드릭스는 6살까지는 가족과 같이 살다가 지미의 집에서 가까운 위탁 가정에 맡겨져 어린 시절 두 형제는 자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지미의 어머니 루실 지터는 밝은 피부와 직모를 가진 빼어난 용모의 여인이었다. 루실은 알 헨드릭스와 이혼 후 고혈압으로 불과 3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는데,[* 지미 헨드릭스는 아버지가 장례식에 보내주지 않아서 장례식 당일에는 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울었다.] 사춘기에 일어난 젊은 어머니와의 사별은 지미 헨드릭스의 성격과 음악에 큰 영향을 준다. 부모의 잦은 [[부부싸움]]과[* 부모가 모두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있어 정상이 아니다 보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끼니조차 잇기 힘든 빈곤으로 어린 지미는 [[캐나다]] [[밴쿠버]] 인디언 보호 구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자주 보내졌다. 할머니는 지미에게 [[체로키]] 인디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직접 숄과 판초를 짜서 손자에게 입혀주었다. 결국 지미의 부모는 이혼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 알 헨드릭스가 지미 형제들에 대한 양육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미의 이모, 할머니 그리고 이웃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보살폈고, 지미 헨드릭스는 이들 사이를 떠돌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성장기를 보낸다.[* 고등학교 퇴학 후에도 친구가 일하는 햄버거집에 마감 시간에 나타나 그날 팔리지 않아 버려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얻어갔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걸음걸이가 어정쩡했는데, 어렸을 때 제대로 된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녀서 였다.] 어릴 적 일화 중에, 집이 가난해서 아버지가 [[기타]]를 사주지 못했는데, 지미 헨드릭스 방에 들어가보면 빗자루 지푸라기들이 매일 널려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 지미가 빗자루를 들고 방에서 미친 듯이 기타 치는 상상을 하면서 빗자루를 "연주"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하도 빗자루를 기타라고 상상하며 들고 다녀서, 학교 직원이 "얘 기타 안 사주면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악기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요청은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지미 헨드릭스가 본격적으로 [[블루스]] 음악을 접할 기회가 생긴다. 지미의 아버지가 잠시 형편이 풀려서 낡은 집을 구입하고 하숙을 쳤는데, 하숙으로 들어온 어느 부부가 레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지미는 [[머디 워터스(음악가)|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로버트 존슨]], [[라이트닝 홉킨스]] 등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14살에 쓰레기통에서 주운 '''한 줄짜리''' [[우쿨렐레]]를 찾게 되고, 이걸 가지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들, 특히 "[[Hound Dog]]"를 즐겨 연주했다.[* 실제로 지미는 1957년쯤에 엘비스의 공연을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또한 영어 위키에서도 지미가 커버한 'Hound Dog'는 엘비스의 버전을 듣고 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본래 'Hound Dog'는 여성 흑인 가수 빅 마마 쏜튼이 발표한 것이고, [[리틀 리처드]]도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 물론 [[악보]] 따위 없고 그냥 귀로 듣고 따서 연주. 15살에 아버지가 선물해준 5달러짜리[* 여담으로 당시 [[Stratocaster]] 한 대의 가격이 200달러 초중반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쿠스틱 기타]]가 첫 기타다운 기타였고, 이때부터 친구들과 이웃들로부터 어깨 너머와 귀동냥으로 기타를 배우면서 라디오와 음반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귀로 카피했다. 밴드도 결성해서 연주도 했다. 그러나 밴드 음악을 하면서 [[어쿠스틱 기타]]는 음량이 작아서 소리가 묻혀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침내 16살 때 그의 아버지가 'Supro Ozark 1560 S'라는 [[일렉트릭 기타]]를 지미에게 선물해준다.[* 지미 헨드릭스 사후 저작권을 비롯한 그의 유산이 아버지에게 상속되었다. 이 양반은 2002년에 타계했는데, 그 당시 아들이 남겨준 유산은 무려 8천만 달러로 불어나있었다!!!] 일렉 기타를 손에 넣은 지미 헨드릭스는 본격적으로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시애틀의 한 유대교 회당 지하실에서 첫공연을 했는데, 공연이 끝나자마자 밴드에서 짤리기도 했다. 이후에 지미 헨드릭스는 벨벳톤스(The Velvetones), 락킹 킹스(The Rocking Kings) 등의 밴드에 가입하고,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지미가 밴드 활동에 몰입할수록 그가 학교에 나타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자연히 학업 성적도 떨어졌다. 결국 지미 헨드릭스는 출석수 미달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원래 [[왼손잡이]]였는데, 처음에 아버지가 오른손잡이로 교육을 시켰다. 이는 당시 왼손을 쓰는 것은 [[악마]]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방에 있을 때는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 아버지가 방을 떠나면 왼손으로 연주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원래 아버지 때문에 오른손으로 연주를 하다가 정확한 리듬감을 요하는 피킹을 왼손으로 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왼손잡이 연주로 바꿨다는 얘기도 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인해 헨드릭스는 양손으로 연주가 가능했다. 이 특이한 스킬은 헨드릭스가 악기점에서 이런저런 기타 오디션을 볼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